Festival
AI 시대, 새로운 재능이 펼쳐지도록
ALL About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글
- 김현록(스포티비뉴스 기자)
- 사진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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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About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여름이 다가온다. 장르영화 애호가들 사이에선 가벼운 흥분이 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달이, 몸살이 난다. 어느덧 서른 살을 바라보는 장르영화 마니아들의 축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ucheon International Fantastic Film Festival, 이하 부천영화제, BIFAN)가 어김없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대·최고의 장르영화제로 자리 잡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올해로 28회를 맞는다. 이 쿨하고도 핫한 영화 축제는 늘 그렇듯 세상의 변화를 온몸으로 맞이하고 있다. 하나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짜릿한 도전을 거듭해 온 부천의 뚝심일 거다.
부천이란 도시의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을 빼놓고 부천국제영화제의 출발을 이야기하긴 어려울 것이다. 1914년 부평과 인천의 일부 지역이 합쳐져 탄생한 부천은 경인공업지역의 중심지로 수도권 인구를 흡수하면서 1970~1980년대 빠르게 성장했다. 허나 공업도시의 위상이 하락하고 서울 주변 여러 신도시들이 생겨난 것으로도 모자라 성고문 사건, 공무원 세금횡령 사건 등 불미스런 일들에 휘말려 부천이 거론되며 면을 구겼다. 1995년 민선 1기 지방자치단체가 꾸려진 뒤 부천은 본격적으로 문화예술을 도시의 주요 기조로 삼아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출발한 대표적인 이벤트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다. 이제는 더없이 든든한 도시의 자산이자 한국영화계의 자산이 된 축제의 시작이다.
제1회 부천영화제는 ‘부천’의 영어 표기가 ‘Bucheon’이 아니라 ‘Puchon’이던 1997년 8월 29일 개막했다. 이 때문에 오랜 부천영화제 팬들에겐 아직도 ‘PIFAN’이 정겹다. 워낙 사랑 받은 이름이라 2000년 로마자표기법이 개정되고도 15년 만에야 영화제 영문명이 현재의 ‘BIFAN’으로 정식으로 바뀌었을 정도다.
한국 첫 장르영화 축제의 출발을 기념하듯, 초대 개막작은 100년 전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판타스틱 영화 <달세계 여행>(1896)이었다. 조르주 멜리에스가 만든 12분짜리 무성영화를 필두로 전 세계 27개국 113편의 장·단편 영화가 부천의 관객과 만났다.
부천영화제는 ‘사랑, 환상, 모험’을 주제로 삼은 장르영화 축제를 표방하면서 한 해 먼저 출발한 부산국제영화제와 차별화를 꾀했다. 출발부터 SF 장르는 물론이고 호러, 스릴러, 로맨스, 액션, 코미디, 애니메이션 등 다채로운 장르영화를 두루 선보이면서, 그간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미개봉 화제작 30여 편을 한꺼번에 소개했다. 새로운 콘텐츠에 목말랐던 세기말의 관객들이 뜨겁게 반응하면서 영화제는 영화팬들에게 성큼 다가갔다. 경쟁 부문 ‘부천 초이스’에 최초로 소개된 전도연·한석규의 기념비적 멜로 <접속>은 극장 개봉에서도 대성공을 거뒀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호러 <킹덤>은 무려 4시간 39분간 관객을 사로잡으며 심야상영 붐을 일으켰다. 영화제 홍보대사 격인 초대 ‘피판 레이디’는 이제는 세상을 떠난 월드스타 고(故) 강수연이었다.
단단한 첫발을 내딛은 부천영화제는 부분 경쟁을 도입한 비경쟁 국제영화제로서 세계적 위상과 관객의 지지를 동시에 얻어 나갔다. 판타지에 국한되지 않은 흥미진진한 장르영화들을 소개하는 한편, 초창기 공포, 스릴러, SF 등에 집중하면서 장르영화제로서 정체성을 확립했다. 또 크리스토퍼 놀란, 피터 잭슨, 대런 아로노프스키, 기예르모 델 토로 등이 세계적 스타 감독으로 주목받기 전부터 적극 소개하며 한국 관객에게 호응을 얻었다. 장준환, 나홍진 등도 부천이 일찌감치 발견한 대표 감독이다. 이런 남다른 선구안과 개성 있는 프로그래밍으로 부천영화제는 시네필은 물론 극한장르 마니아 등을 중심으로 충성도 높은 팬덤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2001년에는 아시아 영화제로는 처음 유럽판타지영화제 연합 준회원에 가입하며 아시아 최고 판타스틱영화제로 인정받았다.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이런저런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1회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자마자 닥쳐온 외환 위기와 IMF 사태로 예산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여름에 열려야 할 2회 영화제가 연기되어 12월 18일에야 개최했던 일은 약과다. (이후엔 매년 여름, 주로 7월에 개막했다.) 영화제가 빠르게 성장하며 승승장구하던 2004년 말, 관이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기조를 저버린 집행위원장 해촉 사태는 영화계를 발칵 뒤집어 놨다. 영화제 스태프가 대거 이탈해 2005년 부천영화제와 같은 기간 서울에서 리얼판타스틱영화제를 열고, 영화인들도 보이콧으로 대응하며 등을 돌린 영화제 최대의 위기였다. 진통 끝에 갈등을 수습하고서야 영화제가 다시 제 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
장르영화를 관객에게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새로운 영화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도 부천영화제는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2008년 세계 최초로 장르영화 산업 전문 프로젝트 마켓인 아시아판타스틱영화제작네트워크(NAFF)를 출범시켰고, 장르영화 제작 교육 프로그램 환상영화학교를 시작해 장르영화 제작 저변 확대에 힘써 왔다. 2016년에는 이를 통합한 산업 프로그램 B.I.G(BIFAN Industry Gathering)를 만들고, 2017년부터는 아시아 영화 산업의 키 플레이어들이 함께하는 포럼 ‘메이드 인 아시아’를 진행하는 등 프로그램을 다각화했다. 2019년부터는 칸 필름마켓의 ‘판타스틱7’에 참가 영화제로 이름을 올리는 등 산업 플랫폼으로서의 영향력을 키워 왔다.
또 부천영화제는 한국의 국제영화제 중 가장 앞서 2016년 확장현실(eXtended Reality, XR) 전시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기술을 총칭하는 XR의 가능성에 주목한 ‘비욘드 리얼리티’는 국내 최초, 최대의 XR 전시로 자리 잡았고, 부천영화제는 자연스럽게 영화의 외연을 넓히는 시도에 주목했다. 이 같은 오랜 시도를 집대성한 것이 올해 부천영화제가 제시한 ‘BIFAN+’다. 기존 산업 프로그램 ‘B.I.G’와 XR 콘텐츠 전시 ‘비욘드 리얼리티’, 지식재산권(IP) 육성 사업인 ‘괴담 캠퍼스’ 등을 통합해 리브랜딩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신설된 ‘AI영화’ 부문이다. 전 세계는 물론 영상 산업에서도 화두로 떠오른 인공지능(AI) 시대에 발맞춰 부천영화제는 국내의 국제영화제로서는 최초로 AI영화 국제경쟁 부문 ‘부천 초이스: AI영화’를 도입하고, AI 영상 제작과 관련한 이해와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콘퍼런스, AI 워크숍도 개최한다. 신철 집행위원장은 “올해 ‘BIFAN+’의 메인 이슈는 ‘BIFAN+ AI’가 될 것”이라며 “거대한 자본의 접근이 어려운 새로운 재능들이 자기 비전을 펼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희망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 비전을 확인할 수 있는 28회 부천영화제는 오는 7월 4일부터 14일까지 열린다. 부천의 문화예술 사랑에 대한 상징과도 같은, 지난해 5월 개관한 부천아트센터에서 최초로 영화제 개막식이 열린다. 개막에 앞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영화음악 콘서트 전야제도 예정되어 축제의 시작이 한층 특별해질 전망이다. 올해 부천에서는 로즈 글래스 감독의 <러브 라이즈 블리딩>을 개막작으로 49개국에서 온 255편의 장·단편 영화가 관객과 만난다. 폐막작은 정 바오루이의 <구룡성채: 무법지대>다. 2017년부터 동시대 대표 배우를 선정해 여는 ‘배우 특별전’도 어김없이 이어지는데, 올해의 주인공은 손예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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